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그리고 닷컴버블의 데자뷰
오늘은 매매 기록 대신, 지금 시장을 흔들고 있는 두 가지 큰 흐름을 정리해본다. 하나는 한국 증시의 사상 초유 사태고, 다른 하나는 이 모든 하락의 배경에 깔린 AI 버블 논쟁이다.
1. 사상 초유 —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
7월 29일, 코스피와 코스닥이 나란히 서킷브레이커를 발동했다. 1966년 제도가 도입된 이래, 두 시장이 이틀 연속으로 서킷브레이커를 맞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코스피는 이날 서킷브레이커 발동 당시 전일 대비 8.17% 내린 5,531.56까지 밀렸다가, 후반에 낙폭을 일부 만회하며 5,663.24에 마감했다(-5.98%). 코스닥도 662.68로 마감했다(-6.12%). 코스피의 올해 서킷브레이커 발동은 이번이 아홉 번째인데, 우리 증시 역사 전체를 통틀어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건 총 15차례뿐이다. 역대 발동 사례의 절반이 넘는 횟수가 최근 몇 달 사이에 몰린 셈이다.

2. 낙폭으로 보면 IMF보다 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7월 28일까지 코스피는 한 달 동안 약 29% 하락했다. 이는 1997년 10월 외환위기 당시의 월간 하락률(약 -27%)을 넘어선 수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코스피의 월간 최대 하락률이 약 -23%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도, 이번 하락은 그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사이드카 발동 횟수도 이례적이다. 올해 코스피·코스닥을 합쳐 사이드카가 60회 넘게 발동됐는데,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연간 기록(45회)을 7월 말 시점에 이미 넘어선 상태다.
3. 레버리지의 역습 — 56조 원 손실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은 국내 개인 투자자들이 레버리지 ETF 투자로 약 56조 3천억 원(387억 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추산했다. 한국 자산 기초 레버리지 ETF의 시가총액이 6월 22일 약 76조 원에서 최근 27조 원대로 줄어든 데다, 그 사이 신규 자금까지 유입된 점을 감안한 추정치다.
종목별로는 SK하이닉스 레버리지 ETF의 시가총액 감소 폭(약 24조 7천억 원)이 가장 컸다. 그런데도 개인 투자자들은 지난달 23일 이후 SK하이닉스를 23조 원 넘게 순매수했고, 이 매수분에서만 약 8조 3천억 원의 손실을 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됐다. 씨티 측은 "개인 투자자들이 아직 투매에 나서지 않고 있다"며, 코스피가 과열 구간에서는 내려왔지만 아직 저평가 국면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신용융자 잔액도 32조 7천억 원으로, 연초 이후 쌓인 포지션의 청산이 65% 정도만 진행된 상태라고 한다.
4. 원인 논쟁 — 창신메모리 때문일까
일부에서는 이번 폭락의 원인으로 중국 메모리 기업 창신메모리(CXMT)의 상장을 지목한다. 중국 업체가 시장에 등장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경쟁력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다.
다만 이 해석에는 반론도 많다. 만약 자금이 한국 반도체에서 중국 메모리로 이동한 것이라면 창신메모리 주가는 계속 올랐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상장 직후 반짝 관심을 받은 뒤 차익 실현 매물이 나오며 하락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창신메모리 효과였다면 그날도 주가가 올랐어야 하는데 오히려 내렸다며, 글로벌 반도체 업종 전반의 조정과 기술적 매도 영향이 더 컸다고 짚었다.
대통령실 정책실장도 이번 급락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때문만은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AI 혁명 자체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지만, 빅테크의 대규모 투자가 실제 매출로 이어지고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시장이 의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한국 시장의 변동성이 유독 큰 이유로는 개인 투자자 비중이 높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들었다.

5. 더 큰 그림 — 닷컴버블의 데자뷰
여기서 시야를 좀 더 넓혀보자. 최근 시장에서는 지금의 AI 투자 열풍을 2000년 닷컴버블에 빗대는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1990년대 후반, "인터넷이 모든 걸 바꾼다"는 기대 속에 통신사들은 앞다퉈 광케이블을 깔았다. 데이터 트래픽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거라는 믿음 아래, 신생 통신사들까지 대규모로 뛰어들었다. 문제는 이들에게 현금이 없었다는 점이다. 루슨트·노텔·시스코 같은 장비회사들이 "내 장비를 사라, 돈은 내가 빌려주겠다"며 대출을 해줬고, 2000년 한 해에만 이런 대출이 300억 달러 가까이 풀렸다.
그런데 같은 해, 데이터 압축 기술과 파장분할다중화(DWDM) 같은 신기술이 확산되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같은 케이블로 훨씬 많은 데이터를 보낼 수 있게 되자, 이미 깔아둔 광케이블만으로 수요가 충족되고도 남는 상황이 됐다. 버블은 그렇게 꺼졌다. 월드컴·글로벌 크로싱 같은 대형 통신사가 무너졌고, 2000년 3월 5,048포인트로 정점을 찍었던 나스닥은 2002년까지 78% 폭락했다. 당시 깔린 광케이블의 95%는 한 번도 불이 들어오지 않은 채 방치됐다.

6. 지금의 GPU도 닮았다 — 순환금융 구조
당시와 지금의 공통점은 순환금융(circular financing)이다. GPU를 파는 쪽이 돈을 대주고, 그 돈이 다시 GPU 판매 매출로 돌아오는 구조다.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걸 '무한 돈복사'라고 부른다. 같은 돈이 한 바퀴 돌 뿐인데, 관련된 모든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같이 올라가는 걸 꼬집는 말이다.
최근 엔비디아는 오픈AI의 오하이오 데이터센터 프로젝트를 위해 2,500억 달러 규모의 금융보증을 서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여기에 오픈AI가 엔비디아 칩을 사들이는 데 필요한 3,500억 달러까지 별도로 지원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엔비디아가 굳이 보증까지 서는 이유는 간단하다. 오픈AI는 적자 상태의 비상장사라 신용등급이 투자 부적격이다. 데이터센터를 지을 소프트뱅크 자회사가 은행에서 건설 자금을 빌리려면, 결국 임차인인 오픈AI의 신용이 문제가 된다. 엔비디아가 보증을 서주면 사실상 엔비디아의 신용으로 돈을 빌리는 셈이 돼서 낮은 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해진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도 직접 대출이 아니라 보증이기 때문에 재무제표에 부채로 잡히지 않는다는 이점이 있다.
이런 구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 투자를 발표한 적이 있고, 오라클은 오픈AI와 5년간 3,000억 달러 규모의 클라우드 계약을 맺었다. 오라클이 그 데이터센터를 채우려면 결국 엔비디아 칩을 사야 하니, 돈은 엔비디아 → 오픈AI → 오라클 → 다시 엔비디아로 돌게 된다. 엔비디아는 이 밖에도 코어위브·네비우스·IREN 같은 데이터센터 기업들에 투자해왔고, 그 규모를 합치면 5,400억 달러가 넘는다.

7. 가장 약한 고리 — 오픈AI의 재무
이 순환금융에서 가장 약한 고리는 오픈AI의 재무 상태다. 오픈AI는 1달러를 벌 때 1.22달러를 쓰는 구조이고, 상장 예비심사 서류에서는 2030년 전후 흑자 전환을 예상하고 있다. HSBC는 오픈AI가 2030년까지 최소 2,070억 달러를 추가로 조달해야 버틸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매출 250억 달러 규모의 회사가 앞으로 5년간 매년 800억~1,000억 달러 규모의 컴퓨팅 약정을 감당해야 하는 셈이다.
문제는 위험이 전염될 수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오라클·오픈AI는 서로에게 투자자이자 공급자이자 고객인 관계라, 한 곳이 흔들리면 도미노처럼 번질 수 있다. 엔비디아는 막대한 현금창출력이 있어 버틸 수 있겠지만, 오픈AI와 오라클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고리로 꼽힌다.
8. 세 가지 질문
지금 상황은 결국 세 가지 질문으로 모인다.
① AI가 수천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정당화할 만큼 돈을 벌 수 있을까.
② 그때까지 오픈AI가 계속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까.
③ 압축 기술과 DWDM이 등장해 광케이블 수요를 줄였듯, GPU를 덜 깔아도 되는 효율 혁신 기술이 나올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에는 시간문제일 뿐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지금 시장이 가장 고개를 갸우뚱하는 건 두 번째 질문이고, 세 번째 질문은 아직 다들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수준이다.
결론
한국 증시의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는 단순히 국내 이슈가 아니다. 반도체 의존도가 높은 한국 지수 구조, 레버리지 상품에 쏠린 개인 투자, 그리고 그 위에 얹힌 글로벌 AI 인프라 투자에 대한 의구심까지 여러 겹이 겹쳐서 나온 결과로 보인다. 낙폭이 크다고 바로 바닥이라 단정하기보다는, 추가 하락을 만들어낼 위험 요소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계속 확인하면서 대응하는 게 맞다고 본다.
참고자료: MBC · 뉴스핌 · 허프포스트코리아 · 파이낸셜뉴스 · 오마이뉴스 · 이데일리 · Wall Street Journal (Reuters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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